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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01-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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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마음으로 찾아가본 홍은동 옥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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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천 하천가에 자리한 전통사찰 `옥천암`과 바위에 새겨진 불상 `백불`ⓒ김종성

홍제천 하천가에 자리한 전통사찰 `옥천암`과 바위에 새겨진 불상 `백불`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몸과 마음을 다잡고 새해 새 소망을 기원하고자 서대문구 홍은동 옥천암(玉泉庵) 백불(白佛)을 찾았다.

홍제천변 산책로를 지나다 보면 천변가 절벽 밑으로 작은 암자와 누각이 보인다. 옥천암(서대문구 홍지문길 1-38)이라는 아담한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직할사찰로 비구니의 수도 도량이자 서울시 전통사찰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모래가 많아 옛날엔 모래내로 불렸던 홍제천.ⓒ김종성

모래가 많아 옛날엔 모래내로 불렸던 홍제천.

산속이 아닌 하천가에 있는 이채로운 암자라 더욱 눈길을 끄는 곳이다. 오늘날처럼 주변 동네가 도시화되기 이전만 해도 이곳은 옥같이 맑은 물이 흘렀단다. 홍제천의 상류지역이라 물이 더욱 맑았으리라. 도성에 있는 남녀들이 줄을 서서 물을 마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서 절 이름 또한 옥천암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절은 사찰 자체보다 높이 6m의 커다란 바위에 새겨놓은 관음보살상으로 더 유명하다. 하천변 암자 안에 하얀 옷을 입은 불상이 앉아있다. 옛날 옛적 큰 홍수나 산사태 때 떠내려 왔을 거대한 바위 앞면에 장대한 마애좌상을 새겼다. 정식명칭은 ‘홍은동 보도각 마애보살좌상(弘恩洞普渡閣磨崖菩薩坐像)’이란다.

‘옥천암 보도각 백불(白佛)’이라고도 불리는 부처상으로 흰색 분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고, 머리에 관모를 쓰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얼굴은 둥근 편이고, 가늘고 긴 눈과 작은 입으로 표현돼 있어 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인다. ‘보도각’은 흰 부처를 둘러싼 전각을 말하고, ‘보도(普渡)’는 모든 중생을 구원한다는 의미다. 바위의 왼쪽 편과 뒷면에는 소원을 빌면서 바위를 갈았던 붙임바위가 남아 있다.

커다란 바위에 새겨놓은 관음보살상을 찾아 기도하는 불자들 ⓒ김종성

커다란 바위에 새겨놓은 관음보살상을 찾아 기도하는 불자들

옥천암은 예부터 서울의 여인들이 줄을 서서 예불했던 제일의 기도처였다. 그런 역사를 증명하듯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 있는 백불 아래에서 기도를 하는 불자들이 줄을 이었다. 백불 뒤편 붙임바위 아래 앉아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는 보살들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모두가 간절해 보였다.

알고 보니 옥천암은 동해 낙산의 홍련암, 서해 강화도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과 함께 4대 관음기도 도량이란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구제하는 대중적인 보살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민간에서 많은 신앙을 받았던 불상이기도 하다.

옥천암에서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로 기도 효험이 뛰어나다 하여 지금도 서울 시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불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이 부처 앞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온다. 고종의 어머니이자 흥선대원군의 부인이 이곳에서 아들의 복을 비는 치성을 드리면서 불상에 하얗게 칠을 하였고 이때부터 ‘백불(白佛)’로 불렸다고 한다.

기성종교의 시각에선 미개한 신앙 혹은 미신이라 치부하겠지만, 바윗돌이나 노거수 나무, 바다, 심지어 역사 속 장군 등을 영적 매개로 하는 민간신앙엔 한 가지 큰 미덕이 있다. 자기가 믿고 추앙하는 신이 타인과 다르다 하여 그를 배척하고 전쟁까지 벌이진 않는다는 거다.

옥천암 백불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호였다가, 2014년 3월 대한민국 보물 제1820호로 승격되면서 공식명칭은 ‘옥천암 마애좌상’이 되었다.

돌계단을 올라 문 안으로 들어서면 옥천암 경내가 나온다. ⓒ김종성

돌계단을 올라 문 안으로 들어서면 옥천암 경내가 나온다.

홍제천에 걸려 있는 작은 보도교 다리를 건너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권율장권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당시 권율장군은 왜군에게 밀려 옥천암을 요새로 삼아 배수진을 치게 되었다. 조선군은 홍제천을 사이에 두고 야간매복에 들어갔다. 옥천암을 사이에 두고 조선군과 왜군은 상대방의 군사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왜군들은 옥천암 마애부처를 조선의 장군으로 오인하면서 탄약을 발포하기 시작했다. 왜군의 탄환은 이내 바닥이 났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왜군들은 당황하며 퇴각하던 중 권율장군의 반격에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고 한다.

암자의 아담한 누각들과 바위에 새겨진 흰 부처가 홍제천과 잘 어우러져 있다. 이곳부터는 홍제천의 최상류로, 북악산을 향한 자연계곡의 힘찬 모습으로 바뀐다.

신앙을 떠나, 새로운 결심을 세우고 새해를 시작하는 데 옥천암 백불만한 곳도 없을 듯하다. 춥다고 방안에만 웅크려 있지 말고, 옥천암 백불에서 저마다 소중한 소망을 빌어보는 건 어떨까?

문의 : 옥천암 사이트(www.okcheonam.com)

 

 

출처 : 서울시 내손안의 서울